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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 지내는 순서와 방법 및 간소화 (Feat. 조상 잘 만나면 해외여행)

by 요니701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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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지내는순서

 

ㅁ 차례(茶禮)

 

차례의 의미

차례는 그 이름처럼 ()’를 올리는 예식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명절(, 추석)에 올리는 제례를 말합니다. 절기에 따라 지낸다 해서 절사(節祀)’라고도 합니다.


조선시대 생활규범 역할을 했던 󰡔가례󰡕에는 참례(參禮: 사당에 참배하는 것)’천신례(薦新禮: 절기에 따라 제철음식을 올리는 것)’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차례입니다.

 

차례의 형식

중국에서는 차가 일상 음료였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기에 주로 술로 대신했습니다. 숙종-영조 대의 학자인 도암 이재(李縡, 1680~1736)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차는 본래 중국에서 사용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례의 절차에 나와 있는 설다(設茶점다(點茶)와 같은 글귀는 모두 빼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절사의 의미에 맞춰 제철 음식을 올렸고, 현대 유림의 대표 격인 성균관에서도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위주로 나물과 과일 등의 간소한 상차림을 제시했습니다.

 

현대 사회 차례의 의미

유교는 가족중심 농경사회를 지탱하는 윤리를 개발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유교는 장유(長幼)와 귀천(貴賤)의 사회적 구분을 두고 그에 따른 직분을 수행토록 하여 상호 긴밀한 사회적 관계망 안에 개인을 위치시킴으로써 사회 유지에 강력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24절기에 맞춘 절사는 가족 중심의 지역 사회에서는 일종의 축제와 같이 관계를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뤄진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로 가족의 규모는 축소되고, 기존의 유교 윤리는 힘을 상실합니다. 20세기가 되면 유교는 망국의 원인으로 비난받으면서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의 박제된 전통으로서 보존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현대 한국 사회에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자리임과 동시에 그 번다한 형식 탓에 종종 분란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절사의 본래 의미에 주목한다면 명절 차례는 가족의 관계와 결속을 중심에 두고 형식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차례의 형식과 순서 제안


전통과 현대 권위자들의 권고에 맞추어, 밥과 국 대신, 설에는 떡국과 추석에는 송편을 두고, 이에 더하여 가족들이 좋아하는 별찬과 시식을 간소하게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이 차려지면 각 가정의 대소사를 모아 축()을 읊고, 다 같이 혹은 세대 순으로 혹은 가정 단위로 배()를 합니다. 설에는 다 같이 배를 한 후, 세대 순으로 세배를 하고 차례를 마칩니다. 차례 후에는 음복을 하고, 상을 내려 식사와 환담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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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제사(祭祀)

 

제사의 의미: 사직, 종묘, 제사

 

제사는 본래 신령에게 올리는 제사와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로 구분됩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에 이러한 예식이 있고 예식을 관장하는 종교가 있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유교가 특히 그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천신(天神)에게 지내는 제사는 오직 황제(=천자)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왕 4(783)에 사직(社稷: 토지신과 곡식신)을 위한 단을 짓고 제사를 지내다가, 1897년 광무개혁과 함께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원구단(圜丘壇)을 짓고 천신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도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었습니다. 종묘(宗廟)는 왕과 왕비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고려 이후로 7묘제를 지냈습니다. 그 이상은 영녕전에 모셨습니다. 사대부 가문에서는 집안에 사당을 두어 고조 이하 4대의 신위를 배향했습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천자는 7, 제후는 5, 대부는 3, 사는 1, 서인은 침에서 제사를 지낸다 했으나 이후 점차 방만해졌습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 사회·경제가 극심히 혼란해졌는데, 귀천과 부귀가 불일치하게 되면서 반상(班常)의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전통의 전수자 역할을 했던 양반이 몰락하고 그 자리를 신흥 지주와 거상들이 채우면서 제사와 같은 행사들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기에 유교가 정치권력에 남용되었고, 관혼상제의 전통 예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왜곡의 일부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기초하고 있고 일부는 독재정권의 무지와 오해에 기인했습니다. 여기에 197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적 성장은 다시 한 번 마치 17세기 때와 같은 변질을 촉진하였고,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의 한 소재로 소모되고 있습니다.

 

제사의 취지와 현대적 의미


유교의 태두인 공자 이하 춘추전국시대 유교지식인들이 제시한 제사의 목적은 농업기반 혈연적 봉건사회 안에서 각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이야기를 꺼렸고,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잘 모시라고 훈계했으며, 제사를 매끄럽게 치르느니 차라리 진심으로 슬퍼하라고 했습니다.

맹자는 살아있는 사람이 굶고 춥지 않은 뒤 상서학교를 지어 인륜과 예의를 가르치라고 했고, 순자는 기우제란 백성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단언했고, ()란 인간의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해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말을 구분했습니다.


많은 유교의 권위자들과 명망있는 가문들에서 제사의 간소화를 주장하는 것처럼, 아울러 현대 사회에서 유교의 변화와 의미를 고려할 때, 제사 역시 그 형식 자체에 얽매이기보다 본래의 취지를 되살려 가족이 화합하고 따뜻하게 고인을 추모하며 장유(長幼)의 순서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사의 전통적 형식


조선시대 제사는 󰡔가례󰡕를 좇았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진설(陳設) 제수를 올림   유식(侑食) 첨작 후 삽시한 뒤 제주가 재배
강신(降神) 신주가 있을 경우 참신 후 강신
제주가 분향하고 잔을 올리고 재배, 모두 재배
  합문(闔門) 제주 이하 전원이 밖으로 나오고 불을 어둡게 한 후 문을 닫음
진찬(進饌) , , , , , 국을 올림   계문(啓門) 제주가 기침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감
국을 물리고 숭늉이나 차를 올림
초헌(初獻) 제주가 잔을 올리고 축이 독축을 함
독축 후 제주가 재배
  사신(辭神) 제관 일동 재배
아헌(亞獻) 종부가 잔을 올리고 재배   철상(撤床) 음복 후 지방과 축문을 사름
상을 치우고 음식을 나누어 먹음
종헌(終獻) 제관 중 연장자가 잔을 올리고 재배      


제사는 해시(亥時)에서 자시(子時) 사이에, 현대식으로 보자면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지내도록 했으나 근래에는 기일 저녁 일몰 후 지내기도 합니다.

 

제사의 형식과 순서 제안


제사는 진설부터 철상까지 엄숙하면서도 따뜻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상신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제외하면, 현대의 논란은 주로 제수의 낭비와 절차의 번잡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는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이자 가족이 화합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제수는 고인이 생전에 즐겼던 음식과 참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고루 준비될 수 있도록 하되 그 종류와 양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주희를 그렇게 존숭했던 조선의 유학자들도 주자와는 거리가 수천 리이고, 세월은 수백 년이라면서 당시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제수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제사의 순서는 기존과 같이 하는 것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나, 진설과 진찬을 합쳐 강신 앞에 하고, 초헌 때의 독축은 각 가정의 대소사를 중심으로 하며, 아헌과 종헌은 묶어서 세대 순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유식과 합문 때에도 식사와 환담을 같이 하는 현대의 추세에 맞추어 굳이 불을 어둡게 하고 자리를 떠나는 대신 잠시 둘러 앉아 환담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사를 올리는 시간은 기일 당일 일몰 이후를 원칙으로 하되, 제사 시간 이후 식사 시간을 고려하여 융퉁성있게 조절하면 좋을 듯합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란색이 바꾼 부분)

 

진설(陳設)
진찬(進饌)
제수를 올림, 메와 국도 같이 올림   유식(侑食)
합문(闔門)
첨작 후 삽시한 뒤 제주가 재배
나가지 않고 둘러 앉아 환담
강신(降神) 신주가 있을 경우 참신 후 강신
제주가 분향하고 잔을 올리고 재배, 모두 재배
  계문(啓門) 제주가 기침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감
국을 물리고 숭늉이나 차를 올림
초헌(初獻) 제주가 잔을 올리고 축이 독축을 함
독축 후 제주가 재배
  사신(辭神) 제관 일동 재배
아헌(亞獻)
종헌(終獻)
세대 순으로 잔을 올리고 재배   철상(撤床) 음복 후 지방과 축문을 사름
상을 치우고 음식을 나누어 먹음

 

축문 제안

축문의 문제

축문은 대체로 지금 올리는 제사의 참여자와 그 관계, 심정을 서술합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한자와 한문이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축문의 문구들은 고전의 명구들을 축약하여 인용한 것이 많아 난해한 부분이 많습니다. (학생, 유인, 휘일, 추원, 호천 등)

 

축문 제안

현대에 맞추어 축문은 한글로 써서 제사의 참석자들이 제사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의 대상인 고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과 제사 참석자들이 서로의 동향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부분, 고인에 대한 심정 등을 서술한다면, 제사의 의미가 오히려 생생하게 재생될 것입니다.

 

축문 제안 예시 (할아버지 제사의 경우)

  제사를 지내는 날을 고함
오늘은 몇 월 몇 일 ○○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고인에 대하여 알림
아버님께서는 ○○에서 태어나셨고, ○○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셨으며, ○○세에 어머님과 혼인하시어 우리 형제들을 낳고 길러주셨습니다
각 가정의 근황을 알림
아버님, 올해 저와 제 처에게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이네는 이런이런 일이 있었고, 증손주인 ○○이도 이렇게 잘 크고 있습니다.
둘째인  ○○이네는 이런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사의 심정을 술회함
아버님께서 돌봐주셔서 저희 가족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일을 맞아 제를 올리려니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생전에 즐기셨던 음식들과 맑은 술로 아버님을 모십니다.
흠향하시옵소서.

 
 

차례지내는순서

그럼 이만, 명절 때마다 각 가정에 배포되어야 할 한 현자의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언을 올리며 오늘 포스팅을 마칩니다. 총총..

 

차례지내는순서

 

참고로 이것도.. 그럼 정말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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